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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과학

철새는 지구 자기장을 어떻게 감지할까?|눈 속 크립토크롬과 라디칼 페어의 원리

by 콘비벤씨아 2026. 9. 11.

철새는 수백 km, 때로는 수천 km를 이동하고도 목적지를 찾아갑니다.

사람이라면 지도와 GPS가 필요할 거리인데, 새에게는 스마트폰도 나침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철새는 도대체 어떻게 방향을 알까요?

태양의 위치, 별자리, 냄새, 지형 같은 여러 단서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능력, 즉 자기감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신기한 질문이 생깁니다.

지구 자기장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철새는 어떻게 이렇게 약한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을까요?

현재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설명 가운데 하나는 놀랍게도 새의 눈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입니다.

철새에게는 정말 ‘몸속 나침반’이 있을까?

철새가 지구 자기장을 방향 판단에 활용한다는 사실 자체는 오랜 행동실험을 통해 뒷받침돼 왔습니다.

하지만 새가 사용하는 자기 나침반은 우리가 쓰는 막대자석 나침반과 조금 다릅니다.

일반적인 나침반은 자기장의 북극과 남극을 구분합니다.

반면 철새의 자기 나침반은 자기장의 극성 자체보다 자기장 선이 지면을 향해 어느 각도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흔히 경사 나침반(inclination compass)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새가 머릿속으로

“저쪽이 북극이다.”

라고 직접 읽는다기보다,

“자기장 선이 이런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으니 이동 방향은 이쪽이다.”

라고 판단하는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화살표를 읽는다기보다, 언덕의 경사를 보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판단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능력에는 아주 특이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빛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왜 자기장을 느끼는데 빛이 필요할까?

자기장이라면 자석 같은 물질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철새의 방향 감각을 연구한 여러 실험에서는 특정 파장의 빛 조건이 자기장에 따른 방향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새가 자기장을 눈으로 감지하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등장하는 물질이 크립토크롬(cryptochrome)입니다.

크립토크롬은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 계열입니다.

새의 망막에서도 여러 종류의 크립토크롬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 단백질 내부에는 빛을 흡수할 수 있는 FAD라는 분자가 들어 있습니다.

빛이 크립토크롬에 들어오면 전자의 이동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매우 짧은 시간 동안 특별한 상태의 두 분자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 이것을 라디칼 페어(radical pair)라고 부릅니다.

여기서부터 양자역학이 등장합니다.

라디칼 페어란 무엇일까?

라디칼은 홀전자를 가진 분자나 원자를 말합니다.

전자들은 보통 짝을 이루지만, 특정 화학반응 과정에서는 짝을 이루지 않은 전자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전자를 각각 가진 두 분자가 서로 연관된 상태를 형성하면 라디칼 페어가 됩니다.

조금 어렵죠.

두 개의 아주 작은 팽이가 함께 돌고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각 팽이의 방향에 따라 이후에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전자 역시 스핀이라는 양자역학적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디칼 페어에 있는 전자의 스핀 상태는 주변 자기장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구 자기장은 매우 약하지만, 라디칼 페어의 화학반응은 극도로 미세한 세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런 작은 차이가 반응 결과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라디칼 페어 메커니즘입니다.

정리하면 이런 흐름입니다.

빛이 눈에 들어옵니다.

크립토크롬 내부에서 전자가 이동합니다.

라디칼 페어가 만들어집니다.

지구 자기장 방향에 따라 전자의 스핀 상태와 화학반응 결과가 아주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를 신경계가 읽어 방향 정보로 이용한다는 것이 현재 연구되는 가설입니다.

그렇다면 철새는 자기장을 ‘본다’는 뜻일까?

여기서 인터넷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철새는 자기장을 눈으로 본다.”

재미있는 표현이지만,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현재 연구만으로 철새가 우리 눈에 보이는 색깔처럼 자기장을 실제 시각 이미지로 경험한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라디칼 페어 모델에서는 눈 속의 화학반응이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각계가 자기장 정보를 처리할 가능성이 제안됩니다.

하지만 그 정보가 새에게 정확히 어떤 느낌으로 인식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스마트폰 내부의 센서가 방향을 계산한다는 것은 알 수 있어도, 철새 머릿속에 실제로 어떤 ‘화면’이 펼쳐지는지는 아직 모르는 셈입니다.

이 부분은 확인된 사실과 가설을 구분해야 합니다.

크립토크롬이 정말 자기장에 반응한다는 증거가 있을까?

이 가설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당연합니다.

“크립토크롬이 정말 그렇게 약한 자기장에 반응할 수 있나?”

2021년 Natur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철새인 유럽울새(European robin)의 크립토크롬4, 즉 CRY4 단백질을 연구했습니다.

연구진은 유럽울새 CRY4에서 빛으로 생성되는 라디칼 반응이 자기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음을 시험관 실험에서 확인했습니다.

또 이 단백질의 자기장 민감도가 연구에 사용된 닭이나 비둘기의 CRY4보다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철새의 눈에 존재하는 단백질이 실제로 자기장에 민감한 화학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시험관에서 단백질이 자기장에 반응했다는 것과 살아 있는 새가 이 단백질을 실제 나침반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동차에서 나침반 기능을 가진 부품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 부품이 실제 내비게이션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까지 모두 증명된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CRY4는 매우 유력한 후보지만,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최근 리뷰에서도 어떤 크립토크롬이 실제 수용체인지, 지구 자기장 수준에서 필요한 방향성 반응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합니다.

약한 전파가 새의 방향 감각을 방해한다는 연구도 있다

라디칼 페어 가설을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관찰 가운데 하나는 라디오 주파수 자기장입니다.

여러 행동실험에서는 특정 약한 고주파 자기장을 추가했을 때 철새의 자기 방향 감각이 흐트러지는 현상이 보고됐습니다.

전자 스핀을 이용하는 라디칼 페어 반응이라면 이러한 전자기적 교란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라디칼 페어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다만 이것 역시 단독으로 메커니즘 전체를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2024년 연구에서도 이런 특성을 이용해 라디칼 페어 가설을 더 엄격하게 검증할 수 있는 실험 방법이 제안됐습니다.

과학에서는 이런 차이가 중요합니다.

설명할 수 있다와 증명되었다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철새의 자기감각은 크립토크롬 하나로 모두 설명될까?

아직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동물의 자기감각을 설명하기 위해 철을 포함한 자성 물질을 이용하는 메커니즘 등 여러 가설도 연구돼 왔습니다.

또 동물이 자기장을 이용하는 방식에는 단순히 방향을 잡는 ‘나침반’ 기능뿐 아니라 현재 위치를 판단하는 ‘지도’ 기능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자기감각을 하나의 센서로 설명하려고 하면 오히려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현재 철새의 빛 의존적 방향 나침반을 설명하는 데 라디칼 페어와 크립토크롬 가설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생물학적 과정 전체가 완전히 밝혀졌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과 아직 모르는 것

철새가 지구 자기장을 방향 정보로 활용한다는 것은 다양한 행동학적 연구가 뒷받침합니다.

빛 조건이 철새의 자기 나침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크립토크롬은 새의 눈에서 발견되며, 라디칼 페어를 생성할 수 있는 광화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유럽울새의 CRY4가 시험관에서 자기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모르는 것도 많습니다.

살아 있는 철새에서 정확히 어떤 크립토크롬이 핵심 역할을 하는지, 아주 약한 지구 자기장이 실제 신경 신호로 어떻게 변환되는지, 그리고 철새가 그 신호를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지각하는지는 여전히 연구 중입니다.

그래서 현재 가장 정확한 표현은 이렇습니다.

철새의 눈 속에서 빛에 반응하는 크립토크롬과 라디칼 페어가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데 관여한다는 가설은 강력한 실험적 근거를 얻고 있지만, 전체 메커니즘이 완전히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이 정도가 과장하지 않으면서 현재 연구를 가장 잘 전달하는 설명입니다.

마무리

철새의 자기감각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새에게 나침반이 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 눈에는 너무 약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지구 자기장이 분자 수준의 화학반응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결국 동물의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빛 한 개에서 시작된 전자의 움직임이 수천 km를 이동하는 철새의 방향 선택과 연결될 수도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철새의 자기감각은 생물학, 화학, 물리학 그리고 양자역학이 만나는 대표적인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음에는 이 과정의 핵심에 있는 라디칼 페어가 무엇인지, 그리고 전자의 스핀이 어떻게 화학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조금 더 깊게 살펴보겠습니다.

참고한 주요 연구

Xu J. et al., Magnetic sensitivity of cryptochrome 4 from a migratory songbird, Nature, 2021. DOI: 10.1038/s41586-021-03618-9. 유럽울새 CRY4의 자기장 민감성을 시험관 환경에서 조사한 핵심 연구입니다.

Luo J. et al., Orientation of birds in radiofrequency fields in the absence of the Earth’s magnetic field,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 2024. DOI: 10.1098/rsif.2024.0133. 라디오 주파수 자기장을 이용해 라디칼 페어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을 다룹니다.

Rodgers C. T. & Hore P. J., Chemical magnetoreception in birds: The radical pair mechanism, PNAS, 2009. 라디칼 페어 자기감각 모델의 물리·화학적 조건과 근거를 정리한 대표적인 논문입니다.